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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공간

수학자 축사

by brown_board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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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LDhaqosPtA&t=185s 

안녕하세요, 07년도 여름에 졸업한 수학자 허준이입니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 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십오 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 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6분 남짓되는 말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나는 한때 수학자의 꿈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epsode1)

1학년 2학기 미적분학시간에  하이퍼볼릭함수를 처음 접하였다. 생긴 꼴이 삼각함수와 비슷했으나 지수함수로 이루어진 함수였고, 이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고등학교 때 배웠던 쌍곡선 함수가 이런 식으로 표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은 되게 신기한 것인데 왜냐하면 원의 방정식의 x^2+y^2 = 1 는 cosx, sinx로 대체 되는데 반해, 포물선의 x,y로 대체되는 것은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여기서 더 신기한 것은 원의 방정식은 일종의 수렴의 단계라서 생각할 수 있다. 한 점에서 출발한 선이 다른 한점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물선은 그래프를 보면 알듯이 무한히 확장하는 개념이다. 출발한 선은 절대로 다른 점과 만나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바로 우주와 포물선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주의 확장은 포물선의 발산처럼 무한히 증가한다. 그래서 우주를 표현할 때 포물선의 함수를 사용한다.

수업시간때 처음 본 하이퍼볼릭함수를 통해 우주 확장의 신비를 수학적으로 접한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방 침대에 누워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돈걱정없이 온종일 수학의 깨달음으로 매일을 사는 삶을 상상해보았다. 누가 알아주지 못할 지 언정 세상의 본질에 한 발 앞서나가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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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6만원을 들여 [실체에 이르는  길 1,2권]을 구입하였다. 부족한 지식으로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이여서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딱 2가지가 있다.

1. 새로운 세계로 찾아간다는 것은 정답이 없는 길이므로 다른 곳에 빠질 위험이 굉장히 크다.

2. 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포물선이 허용되는 공간 속에서는 삼각형의 각의 합이 180도 보다 작다.

나로써는 굉장히 큰 충격이였는데 포물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생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내합은 180도라는 것을 진리라고 여겨왔는데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흠칫하는 내용이였다.

이렇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어느 순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들기도 했다. 1번 처럼 다른 곳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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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간을 다루다 보니깐 시간이라는 것도 내가 아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현재미래는 시간의 연속이다.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현재가 원점0에 위치해 있을까? 사람의 삶이 80살이라한다면 원점0은 40살이 되어야할까? 아니 어쩌면 시간이 연속적이라는 것도 틀릴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무질서의 공간은 시간마저도 예측 불가능한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느낀 점)

수학자 허준이 선생님의 축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수학자를 꿈꿨던 나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20살 초반의 내가 꿈꿨던 미래는 현재의 내가 되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오면서 상당 부분 뒤틀리고 변형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을] 이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라는 생각을 우선시하며 어떠한 구조가 가장 아름다운지 잣대를 정해야 할 것이다.
사람으로써 태어난 이상, 사람과의 만남이 제일 소중하다. 어떤 순간이 오던 간에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과 만나 함께하여 뜻을 나눌 수 있으니 모든 시도가 소중하다. 미래의 내가 보기엔 현재의 '나'가 타인이 될 수 있고 내 옆의 타인이 내가 될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자신의 생각을 수학적인 문학으로 풀어낸 이 연설은 처음 내가 수학자를 꿈꾸게 했던 감정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나는 절대적인 어떠한 것이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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